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태평양 전쟁/배경 (문단 편집) === 파죽지세의 동맹 나치 독일 === 일본이 전쟁을 결정한 요인 중 하나는 당시 독일의 기세가 워낙 강세였기 때문도 있다. 독일은 유럽 열강국 가운데 하나이자 육군 강국이었던 [[프랑스]]를 겨우 6주만에 완전히 먹어버리고, 다른 유럽 국가들을 모조리 짓밟아 유럽의 [[패자]]로 떠오르고 있었다. 그나마 맞수로 적당한 나라는 오직 [[영국]]과 [[소련]] 정도였는데, 영국은 섬에 틀어박혀서 독일의 공습을 겨우겨우 막아내며 간신히 숨만 돌리던 처지였고, 소련은 한창 독일에게 탈탈 털리고 있던 시점이었다. 즉 독일의 승리가 머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것은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니었고, 일본 역시 1차대전에서 배운 전훈인 경제자립권 확보에 이번 기회를 활용하는게 어떨까 하고 생각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1940년까지 일본의 아베 노부유키, 요나이 미츠마사 내각은 유럽의 전쟁에 개입하지 않는 정책을 고수해왔다. 하지만 고노에 후미마로 총리는 신체제운동과 함께 독일의 나치와 같은 일국일당 정책을 추진했으며, 중일전쟁이 장기화되고 무역이 제한됨에 따라 장기전을 위한 자원 확보가 필요함을 깨닫게 된다. 일본은 이런 상황에서 자신이 원하는 식민지, 즉 동남아를 획득하기 위해서는 항복한 그들의 모국을 지배하는 독일의 양해가 필요할 것이라 판단하고 이를 위해 추축국에 들어갔다. 독일과 일본의 관계는 서로의 이득을 위해 추축국이란 이름을 썼을 뿐이지 거리상 서로 협조하기도 어려웠으며 운명공동체 같은 관계도 애초에 아니었다. 둘은 명목상 추축국으로서 동맹이었지만, 서로 적극적인 협력을 하기엔 거리나 기타 여건상 애초에 불가능했으며 서로 막연한 기대를 품는게 전부인 느슨한 동맹으로 보이는건 이런 이유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